2024. 10. 14. 13:17ㆍ이것저것
가장 눈물이 났었던 이야기
1988년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초등학교를 등교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날씨는 굉장히 화창했고 그윽한 햇살과 더블어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감돌았다.
아침 등교 시간 버스 정류장은 항상 아이들로 북적였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대장 초등학교.
오정동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12번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은 학교 있는 곳이기도 했고 12번 버스의 종점이기도 했다.
12번 버스는 종점인 학교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내리고 차고지로 가던가, 아니면 아이들이 하차한 후 아이들을 힘겹게 피하며 좁은 길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유턴을 하여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버스는 한참이나 기다려서야 도착했다. 학교까지 가는 버스가 12번, 71번 두 대 뿐이어서 버스를 한번 놓치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12번 버스가 도착하자 나는 30원 차표를 내고 올라탔다.
상쾌한 아침의 어울리는 안내양 누나의 힘찬 출발~~~ 목소리와 함께 버스 뒤쪽을 치는 탕탕탕 소리에 버스는 검은 연기의 메케한 연기를 내뿜으며 오늘도 만원버스 속에서 뒤뚱거리며 학교로 출발한다.
학교로 가는 길은 김포공항과 가까이 있어서 만원버스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든 등굣길을 가는 중이면 부우우웅 쒸쉬~~~ 하며 비행기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온다.
그러면 그 많은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버스 창문에 매달려서 그 큰 비행기가 버스를 지나
높은 담장 너머 공항으로 착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 날 운이 좋은 날이면 버스 위치가 비행기 위치가 맞아떨어지면서
비행기에서 바퀴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더욱 가까워진 비행기를 보며 와~~~ 하는 탄성을 질러댔다.
그렇게 한 코스를 지나게 되면 버스는 한참 동안의 신호를 기다린 뒤 엄청 급한 좌회전을 하여
버스 한 대가 지나가기도 힘든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여름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나뭇가지를 피해
버스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양옆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왼쪽으로는 나무들과 황금 논밭에 연속이었고 오른쪽으로는 어린 시절에는 너무도 무서웠던
좁은 아마존 강이 흐르는 습하고 어두침침한 물이 흐리고 있었다.
그 길은 학교 도착하는 순간까지 계속되었고 길 또한 좌우로 꼬불꼬불해서 버스 아저씨가 속도를 내는 찰라면 버스가 곧잘 논두렁이나 물 쪽으로 바퀴가 빠지곤 했다.
그 길은 꼭 신비스러운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느껴지는 곳이다.
꼭 비밀의 정원에서 문을 열고 숲으로 우거진 계속되는 길을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나무의 진한 향기가 버스 안을 가득 메웠고 우리들은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이쪽으로 쪼로로록 저쪽으로 쪼로로록 밀러 다니며 학교까지 도착하곤 했다.
그렇게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릴 때는 그 많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나 할 정도로
앞이고 뒤고 계속해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버스를 내리면 오른쪽으로 학교가 있었는데 학교를 들어가려면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흐르는 아마존 강의 다리를 건너야 학교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문은 너무 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숲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엄두도 못 냈다.
그 다리는 길이가 약 6m에 폭이 1.5m 정도 됐다. 너무도 오래된 돌로 된 그 다리는 군데군데가 갈라져 있었고 사이사이에는 이끼가 끼고 돌의 형태가 거무스름했다.
그 밑으로는 구역질 나는 똥내 비스러 무니 한 흑녹색 빛깔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를 많은 아이들과 지나갈 때면 나는 늘 중간으로 빨리 건너가곤 했다.
혹시나 무너질 것 같은 마음과 그 위를 지나갈 때면 이상한 날파리나 조금 한 벌레들이 날아다니며 온몸에 달라붙었고 그 느낌은 소림 끼치고 따갑고 등에 땀이 뽀송뽀송 올라오는 나쁜 느낌이었다.
그 다리를 건너야만 평화스러운 학교의 교문을 들어설 수가 있었다.
오늘도 이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희뿌연 흙 내음에 운동장을 뛰기도 하며 아이들과 뒷동산으로 자연학습을 함께 가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 또다시 그 아마존 다리를 순식간에 건너서 12번 버스를 기다린다. 그런데 아뿔싸 차표가 없는 것이다.
어릴 때는 항상 차표를 2개씩 들고 다녔다. 많이 들고 다니는 날에는 차표가 없어서 집까지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한 장씩 인정을 베풀어 줬었고,
그러다 어느날이면 차표 검사를 하는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다.
그럼 차표가 없는 아이들은 벌써부터 차표를 엇비슷하게 그려서 아이들이 막 서로 낼 때 같이 섞여서 내거나 차표 반만 오려서 내기도 했으며 침을 발라 반을 갈라서 두 번을 사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초등학교 2학년, 덕산 초등학교를 옮기기 전까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나름 나에 대한 자존심이랄까.. 그런 짓은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암튼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어째 차표가 없는 나에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아무리 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도 나를 태워주는 이는 없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나에게 한 친구가 다가왔다.
그 아이는 나보다 더 작은 체구에 얼굴은 검고 솔직히 좀 촌스러워 보였으며 자신의 어깨보다 큰 파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아직 새 학기라 친구들과의 어색함이 남아 있음에 불쑥 서로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그 아이도 차표가 없는 나랑 같은 상황인 걸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아이는 우리 반 1학년 3반에서 제일 앞 줄에 앉은 아직 말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들, 걸어서 가는 아이들 그 속에 우리 둘은 삐쭛삐쭛 서로를 쳐다보며 서 있다가 우리는 함께 걸어가자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름은 박OO 1학년 3반 나와 같은 반 이 아이는 안동네 사는 아이다.
나는 바깥 동네 사는 아이고 옛날부터 오정동은 안동네와 바깥 동네로 나뉘었는데 바깥 동네는 아파트가 있는 개발된 지역이고, 안동네는 2층 이하의 단독주택이나 담이 있는 단층 건물들로 노후된 지역의 동네였다.
그래서 옛날부터 안동네 바깥 동네의 알게 모르는 갈등들과 아이들끼리도 서로를 견제하는 시선들이 존재했었다. 대장 초등학교는 안동네 끝머리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우리 집으로 가려면 안동네를 가로 질러가야만 했다.
아직까지 혼자서 안동네를 지나가 본 일이 없었기에 걸어간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으로 아니 어린 나에겐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다시 한번 박OO 에게 물어보았다.
집까지 걸아 가는 길을 아느냐고, 난 바깥 동네 사니까 안동네와 바깥 동네를 가르는 길까지는 가야 집까지 가는 길을 알 수 있다고 말했고 박OO 는 거기까지 분명 길을 안다고 하였다.
조금은 미심쩍은 기분도 있었지만 안동네 산다는 말에~
두려움 불안함을 숨긴 채 박OO 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안동네 마을까지 들어서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논밭으로 되어 있어서
길을 따라 돈 밭을 가로질러 걸어가야만 했다.
걸어가는 동안 두려움은 사라지고 친구와 길을 걸어 집에 간다는 게 어느새 재미로 다가왔고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길을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좁은 논길을 따라 양옆으로 황금물결을 한 논 밭들, 그 위를 살랑이는 바람들, 저 멀리 뉘엿뉘엿 해지는 햇살에 붉은빛으로 살짝 물들인 하늘, 그 길을 친구와 걸으니 재미도 나고 두려움은 정다움으로 변해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뉘엿뉘엿 해진 하늘은 어느새 검게 물들고 하늘에선 가랑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굵어진 빗줄기로 변해 옷을 적셨다.
논길은 금세 흙탕물로 변했고, 너무도 어두 컴컴해진 환경에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때 박OO 이 오른쪽 뚝방길로 빠지자고 했다.
우리 집은 저 쪽인데 ,,, 박OO 이는 자기를 믿으라면서 이쪽으로 가면 더 빨리 갈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쪽 길은 말로만 듣던 대부뚝이 있는 곳, 실제로 한 번도 가보진 못 했지만, 그곳에선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로 어른들도 가기를 꺼리는 곳이었다.
뚝에 빠져 죽은 아이, 자살한 여자들, 귀신에 홀려 강에 뛰어든 사람들 여러 이야기들 대부분이 대부뚝에 얽힌 이야기들은 모두가 죽은 이야기거나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로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곳이었다.
하지만, 비가 오는 상황 속에서 계속 고집을 부리기란 상황이 여의치가 못했다. 그리하여 대부뚝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광열이도 대부뚝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라 우리 둘은 거의 뛰다시피 길을 재촉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대부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소문의 실체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강 여기거기서 미친년 머리처럼 길게 늘어진 해초 같은 것들로 여기저기 불어난 물살에 휘젖히고 있었고, 강물은 우리를 금방이라도 빠라들일 듯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진한 습한 냄새와 얼굴을 내리치는 따가운 빗줄기 용솟음치는 강물 소리에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헉!! 저 앞에 검은 희미한 물체가 서 있는 것이 보였고, 우리는 달리다 말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혹시 하는 마음에 서로를 쳐다봤고 점점 더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는 그 검은 물체에 우리는 사지가 떨려왔다. 어떻게 하지,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점점 다가오는 그 물체만 주시하게 되었다. 형체가 가까워졌을 때도 그것이 무엇이지 알 수 없었다.
빗속에 물체가 희미하게 만 보였다. 점점 더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사람인지 알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의 느낌은 생김새만 사람이지 사람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두 명의 우비를 입은 군인, 짙은 국방색 우의를 머리까지 깊게 뒤집어썼고 우리 옆을 지날 때 살짝 눈을 돌려 보았던 그 얼굴은 솔직히 형태를 알 수 없었다.
나의 심리상태와 빗속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둘의 얼굴은 일그러진 형태에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고, 눈 코 입 이 기억나질 않는다.
아님 정말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몸 전체로 느꼈던 안 좋은 기운이 우리를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 군인들 옆으로 1m 터쯤 지나 쳤을까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었다. 뒤를 돌아보면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 대부뚝에 빠트릴 것만 같았다. 전력을 다해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었을 때 뒤를 돌아 보았고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우리는 안동네 마을에 들어와 있었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변해 있었다. 꼭 동화에 나라를 건너 온 것 같은,,, 모든 세상이 밝게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친구 보이질 않았다. 한마디로 깜쪽같이 없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정말 깜쪽같이 없어졌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안동네, 이건 확실한데 그동안 와보지 못했던 안동네의 안쪽이었다.
난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찾다가 찾다가 지쳐 여기가 어딘지 내가 갈 길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어느새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열하듯이 사방팔방을 찾았다. 태어나 처음 잃어버린 길이라는 곳 이 낯선 땅에 혼자 있는 무서움이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두려움과 무서움의 감정으로 다가왔다. 길거리에서 미친 듯이 울어 댔다.
세상이 떠나가라 엄마를 외쳤다. 가슴이 메어졌다. 울어서 너무 울어서 서러움에 가슴이 메어졌다. 내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 둘씩 집이 어디니를 물었다.
그 당시 집 번호가 바뀌는 바람에 나는 집 번호를 댈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삼두 아파트 1동 501호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가 이래 우리 집은 바깥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인데, 왜 우리 집을 몰라 일부로 바깥 동네 사니까 모르는 척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울부짖는 나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양옆으로 흐르듯이 지나가는 듯하였다.
얼마나 울었던가. 얼마나 헤매었던가. 주위 사람들이 미웠고, 바뀐 집 전화번호 가 미웠고, 그 친구가 제일 미웠고, 괜한 엄마가 미웠다.
너무 울어 가슴이 아프고 눈은 퉁퉁 불어트고 콧물로 입 주위는 범벅이 되었다.
한없이 손으로 코를 훔쳤다. 훔치고 또 훔쳐도 알 수 없는 길, 이곳에 나만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울어도 엄청 울었다. 정말 내 평생 최고로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안 날 법도 한데 울고 또 울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나를 집에 대려다 주겠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생각도 할 겨를도 없이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할아버지 뒤를 따라가면서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인신매매, 어린이 유괴, 새우잡이 배, 섬으로 팔아넘긴다는 여러 흉흉한 이야기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시는 걸까 얼마나 걸었을까 어 이곳은 내가 아는 곳이다. 얼마 전 엄마를 따라 자장면을 먹으러 왔던 곳이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방향 가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가시려 하고 있다. 이 길을 따라 할아버지를 따라갔다가는 영영 엄마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정말 영영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저기 나무로 된 단단한 대문이 보인다. 저 대문을 들어섰다가는 난 평생 엄마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난..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엄마와 자장면을 먹으로 왔던 길을 되새기며 한없이 뛰었다.
골목으로 들어가 코너를 나오니 와~~~ 찻길이 보였다.
마치 하얀 빛줄기로 비추듯이 찻길이 보였다.
이 찻길, 안동네와 바깥 동네를 가르는 이 찻길 이 찻길만 건너면 바깥 동네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호도 무시한 체 뛰어 건너갔다.
그때부터 다시 터져 나온 눈물 이것은 기쁨의 눈물이다.
바깥 동네를 들어섰을 때 그 기분은 지금도 가슴이 울컥인다.
울면서 뛰고 또 뛰었다.
삼두 아파트 1동 501호까지 5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엄마~~~ 엄마~~~ 엄마~~~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비로 흠뻑 젖은 옷과 질벅한 운동화
엄마~~~ 엄마~~~ 엄마~~~
소리 내어 외쳐대며 501호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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